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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렌스탐 “도전은 내 삶의 원동력..그래도 골프가 가장 쉬웠죠”

소렌스탐 `도전은 내 삶의 원동력..그래도 골프가 가장 쉬웠죠`
골프여제 소렌스탐 인터뷰
역사상 가장 성공한 골프선수서 사업가이자 엄마로 변신
도전하고 열정을 쏟아야 한다는 점 골프와 사업 같아
도전에 장벽 없다는 점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파
[이데일리 민재용 기자]‘통산 93승, 미국 프로여자골프(LPGA) 메이저 대회 10회 우승, 최초로 60타의 벽을 깬 선수, 골프 상금 2200만 달러(한화 약 230억원) …’

아니카 소렌스탐(Annika Sorenstam·44)이 16년간 프로 골프선수로 활동하며 쌓아올린 기록들이다. 왜 그녀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자 프로골프 선수’라 불리는지 의문을 가졌던 사람들도 그녀의 기록들을 보면 별다른 이견을 달지 못한다.

지난달 30일 이데일리·이데일리 TV 주최 제3회 세계여성경제포럼(WWEF2014) 참석차 방한한 소렌스탐을 서울 서초구 새빛섬에서 만났다.

그녀가 쌓아올린 기록의 무게와 달리 소렌스탐의 첫인상은 너무나 소탈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보여준 온화한 미소와 격의 없는 솔직한 대화는 그녀가 이제 ‘골프 여제’ 보다는 두 아이의 엄마와 사업가로서의 역할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줬다.

◇골프 여제에서 사업가, 두아이의 엄마로 변신

한국에 벌써 20번째 방문했다는 소렌스탐은 “요즘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이 너무 잘하고 있다”는 축하의 인사를 먼저 건넸다.

“1990년대 후반 박세리 선수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서로 발전한 적이 있어요. 아직도 젊고 우수한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이 필드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한국사람이면 매우 자랑스러워 해야 합니다.”

절정의 기량을 보이던 2008년 돌연 은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 물었다. 골프팬들은 그녀가 은퇴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기록을 쌓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 당시 골프에서 무엇인가를 더 이루고 싶다는 동기가 제게는 없었어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여성 사업가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제겐 더 컸습니다.”

필드에선 무적이었지만 은퇴 후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골프 의류 사업을 시작했지만, 때마침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사업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사업을 시작하는데 주저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고급 여성 스포츠 브랜드가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라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죠. 장기간의 안목으로 더 많은 준비를 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초창기 사업은 불안했으나 이후 고급 여성 스포츠 의류 시장이 확대되면서 그녀의 브랜드는 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안정화된 것’인지 묻자 그녀는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안정된 사업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변화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앞으로 나갈 뿐이죠.”

사업 얘기를 하자 골프 여제 때의 카리스마가 눈빛에서 느껴졌다. 골프 선수와 사업가 중 어떤 게 본인에게 더 쉬웠는지 궁금했다.

“당연히 골프죠. 하지만, 골프나 사업이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헌신해야 한다는 큰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골프 선수로서 배운 많은 것들이 현재 사업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사업가 소렌스탐의 삶은 자연스레 ‘엄마 소렌스탐’의 삶 얘기로 연결됐다. 그녀는 사업가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의 균형을 잘 맞춘 성공한 워킹맘이다.

“워킹맘에게 꼭 필요한 능력은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입니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아이들과의 시간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일을 할 때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합니다. 스스로를 헌신하는 게 힘들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고 있다고 느끼는 동기화 작업도 매우 중요합니다.”

◇못다한 골프 이야기..스웨덴의 꿈많은 소녀 정상에 오르다

소렌스탐은 스스로도 자신이 이렇게 성공한 골프 선수가 될지 몰랐다고 고백한다. 어릴 적 스웨덴 출신의 테니스 스타 비외른 보리가 TV에 나온 모습을 보고 `나도 유명한 스포스 스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녀 꿈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테니스 선수로서의 소렌스탐은 썩 훌륭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에도 연습하라는 아버지의 배려로 만들어진 집 지하실 연습장에서 테니스 연습을 했지만, 저의 백핸드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어요.”

16살이 되던 해 그녀는 과감히 골프로 종목을 전향한다. 코스를 분석하고 어떤 샷을 칠지 스스로 책임지는 골프의 매력이 좋았다. 라운딩을 하며 골프 코스를 산책하듯이 이리저리 걷는 것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스웨덴은 남자,여자 구분 없이 함께 훈련해요. 당시 제 또래 남자아이들과 골프 경기를 많이 했는데 그들과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아 열심히 노력한 게 저의 큰 자산이 됐습니다.”

20살이 되든 해 소렌스탐은 자신의 골프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결정을 한다. 바로 세계 골프의 중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 한 것. 엄청난 노력에 더해진 미국의 선진 골프 교육은 소렌스탐을 데뷔 4년 만에 LPGA 정상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무턱대고 정상을 향해 달려온 소렌스탐에게 정상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따라잡으려고 노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도 느꼈다.

“골프선수로서 제가 시련이 없었다고들 생각하지만, 정상에 자리에서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었어요. 결국 2000년 호주 출신의 캐리웹에게 정상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정상자리를 뺏긴 소렌스탐은 오히려 홀가분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의 스윙 폼과 체력, 정신 자세 등을 분석했다. 처음부터 다시 체력훈련과 퍼팅을 연습하며 또 다시 정상에 도전했다. 결국 그녀는 몇 개월 뒤 다시 골프 여제 자리를 차지했다.

◇무한도전의 아이콘 소렌스탐..그녀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중

정상에 자리에 복귀한 그녀의 적수는 이제 필드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03년 남자들만의 대회인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도전하기로 한 것. 그녀의 도전에 많은 남자 프로골퍼들은 불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남자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도전한 거에요.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에 대한 약속이었죠. 그때의 선택은 지금도 저에게 중요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골프 선수 은퇴 후 사업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소렌스탐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골프 선수 시절 스스로 했던 약속은 사업가이자 엄마인 소렌스탐에게 여전히 유용하다.

“제 아이들에게도 이 얘기는 꼭 해주고 싶어요. 여자로서 도전 못할 영역이란 없다. 네 꿈을 이루는데 도전 못할 장벽은 없다고 말이에요.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무한한 열정을 쏟는다면 성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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